스토리

LG소셜캠퍼스 스토리

더 나은 삶을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적경제 플랫폼

  • [조선일보] 전세계 골치 플라스틱, 종이팩으로 해결하려는 한국 스타트업

    2022-08-02839

  • [스타트업 취중잡담] 플라스틱보다 저렴, 재활용 가능한 종이팩 만드는 리필리 김재원 대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박유연 기자 / 김영리 더비비드 기자]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아직까지 ‘계륵’이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별도로 수거⋅처리하는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땅에 묻으면 6개월 안에 자연 분해되는 소재인데도 일반 플라스틱과 함께 처리된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지구를 위한다는 마음 하나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용기를 산 사람 입장에선 당황스럽다.

     

    국내 스타트업이 플라스틱 용기 문제의 실질적인 대안을 내놨다. 우유로 한정되던 종이팩의 쓰임새를 다른 생필품으로 확장한 것이다. 종이팩은 플라스틱보다 저렴하고, 우유팩과 똑같이 재활용 가능하다. ‘리필리’의 김재원(37) 대표를 만났다.

      

    리필리 김재원 대표. 직접 개발한 종이팩을 들고 있다. /더비비드

     

    ◇유학하다 확인한 종이팩의 쓸모

    국내 플라스틱 포장재 시장 규모는 44조원이다. 식료품, 생활용품, 화장품 등 다양한 제품이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팔린다.

     

    리필리는 플라스틱 용기를 종이팩으로 대체하는 연구를 한다. 종이팩은 플라스틱 용기와 비교했을 때 동일 용량 대비 탄소 배출량이 3분의 1 수준인데다 수거 후 화장지, 벽지 등 고급 펄프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유제품 등 식품만 담기던 종이팽에 다른 물질도 넣을 생각을 한 건 국내에서 리필리가 처음이다.

     

     

    뒤늦게 시작한 공부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는 김재원 대표. /김재원 대표 제공

     

    미국 워싱턴 주립대에서 경제공학을 전공했다. “어릴 때부터 창업하고 싶었어요. 물류 유통회사를 운영하시는 아버지 영향으로요. 뒤늦게 대학의 필요성을 느껴 제대 후 공부를 시작했어요. 25세에 대학에 입학해 2013년 대학을 졸업했죠.”

     

    에너지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에선 우리나라보다 ESG(기업의 비재무적인 요소인 환경⋅사회⋅지배구조를 의미함) 경영을 10여년 먼저 도입했어요. 학교 수업에서 관련 내용을 자주 접했죠. 우리나라에서도 머지않아 ESG가 트렌드가 될 거라고 직감했습니다. 귀국 후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잠시 배우다가, 2015년 탄소배출권 컨설팅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탄소배출권을 장외거래로 판매하고 탄소포집기술을 컨설팅해주는 회사였죠. 기업의 재무 상황을 분석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스타트업 데모데이에서 IR을 진행하는 김재원 대표. /김재원 대표 제공

     

    창업을 준비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창업을 고민하던 2018년 직장 동료의 제안으로 IT 창업을 준비하는 팀에 합류했어요. 광고⋅비방성 채팅을 차단하는 텔레그램 메신저 기반의 응용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해외 사용자를 25만명까지 모았지만 수익을 내기 어려워 접었습니다. 그래도 이 경험 덕분에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법이나 투자 방식 등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창업을 결심하고 원점으로 돌아가 사례 연구부터 했다. “원래 제가 하고 싶던 환경 분야에서 창업 아이템을 찾아보기로 했어요. 평소 문제라고 생각했던 플라스틱 소비재 분야를 위주로 찾았죠. 해외의 환경 관련 스타트업은 거의 다 찾았는데, 한 기업이 눈에 띄더군요. 액상 비누를 종이팩에 담아서 파는 기업이었어요. 기업의 재무제표와 투자 라운드를 보니 성장세가 빠르고 안정적이었어요. 미국 현지에 남아있는 친구들한테도 물어보니 다들 그 회사를 알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종이팩 속 숨은 기술 집요하게 찾은 결과

     

      

    이팩 상단에 붙이는 마개 소재도 직접 연구했다. /김재원 대표 제공

     

    종이팩과 플라스틱 용기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비교해보니 ‘우리나라는 왜 우유만 종이팩에 넣어서 팔까’ 의문이 들었다. “탄소 배출량도 3분의 1 수준이고, 심지어 플라스틱 용기보다 종이팩 제작 비용이 60% 이상 저렴해요. 재활용 시스템도 이미 구축돼있죠. 사용한 종이팩은 씻고, 말려 넓게 펼쳐서 반납하면 재활용 업체에서 수거해가요. 모아서 행정복지센터에 반납하면 두루마리 휴지로 바꿔주기도 합니다.”

     

    종이팩과 관련된 곳이라면 모두 찾아가 문의했는데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우리나라에 종이팩을 만드는 회사가 없다는 겁니다. 초반에 찾았던 미국의 스타트업부터, 국내 우유 회사, 외국계 종이팩 기업 등 모두 연락해봤어요. 우리가 잘 아는 우유팩도 사실은 다 수입해오는 것이었어요. 애초에 필요한 회사만 수입해서 쓰니 다른 물질을 넣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한 거죠.”

      

    초기 리필리 공장 모습. /리필리

     

    국내에서 처음으로 종이팩을 제작하기로 결심하고 2020년 11월 리필리를 창업했다. 종이팩을 만들 기계가 먼저 필요했다. “종이팩 제작 기계를 개발하는 곳이 없으니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기곗값이 수십억원이 들더라고요. 이제 막 창업했는데, 구매하기 어려웠죠. 할부로 해달라, 종이팩이 만들어지는 원리라도 간단하게 설명해달라 등등 집요하게 질문하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끈질긴 노력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패기를 좋게 본 사람이 나타났다. “한 엔지니어 회사가 제 이야기를 듣곤 양산에 성공하진 않았지만 개발 중이던 간단한 종이팩 기계 설계 도면을 주셨어요. 이미 다른 사업을 하는 곳이라 개발이 중단된 자료를 주신 거죠. 간단한 설계도면을 들고 국내 엔지니어 회사에 문의해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자체적으로 개발한 종이팩 바닥 부분 접합 기법(S-bottom). 다양한 종이팩을 설명하는 모습. /더비비드

     

    기계 개발에만 10개월이 걸렸다. “종이팩을 접어 실링(이음새를 봉하는 것)하고, 원료를 충진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어요. 이음새를 마감하는 방법도 팩이 터지지 않도록 여러 번 접을 수 있게 갖췄죠.”

     

    끝이 아니었다. “플라스틱 용기 대신 종이팩에 원료를 충진만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다른 기업들이 쉽사리 도전하지 못한 이유가 있더군요.”

     

      

    생활용품을 종이팩에 담을 발상을 한 것은 국내에서 리필리가 처음이다. /리필리

     

    종이팩은 플라스틱에 비해 예민했다. “종이팩은 작은 온도 변화에도 큰 영향을 받고, 어떤 성분을 내부에 넣느냐에 따라 내구성이 달라져요. 특정 성분이 종이팩 표면에 닿으면 코팅면이 벗겨져 종이팩 안에 있는 내용물이 새거나 터져나오죠.”

     

    하나하나 성분을 분석해보기로 했다. “어떤 화학성분은 담아도 괜찮고, 어떤 성분은 안되는지 직접 연구했어요. 특정 성분을 넣고 압력, 온⋅습도, 피롤 테스트(염색 색소를 투입해 종이팩에 성분이 스며드는 정도로 내구성을 평가하는 실험기법)를 거치는 방식으로요. 만들어진 종이팩에 성분을 꿰맞추는 식이지만 이제는 실험 데이터가 5500개 정도 쌓여 다양한 성분을 종이팩에 담을 수 있게 됐어요.”

     

    ◇첫 제품 출시 후 B2B로 사업 모델 전환

     

     

    김재원 대표. 작년 8월 리필리 이름을 건 제품을 처음 출시했다. 현재는 B2B로 사업을 전환했다. /더비비드

     

    기술 개발과 동시에 시장성 검증이 필요했다. 종이팩 용기를 활용한 제품을 내놓기로 했다. “성분 안정성 분석에서 통과한 천연 세제 기업과 협업해 제품을 출시했어요. 천연 성분이라 예민한 종이팩 용기에 담을 수 있었죠. 재활용이 가능한 용기에 친환경 성분의 세제까지 담아 판매하니 반응이 좋았어요. 2021년 8월 제품을 출시해서 12월까지 1300개를 팔았죠.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소비자와 영유아 자녀가 있는 여성분들의 구매가 많았어요.”

     

    별다른 마케팅을 한 것도 아닌데 여러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시장 검증을 하겠다는 전략이 통했어요. 홍보가 없었는데도 여러 기업에서 협업 제안이 왔죠. 기존에 종이팩을 수입해 사용하던 대기업도 문의가 왔고요. ‘우리 기업 제품도 종이팩으로 유통할 수 있냐’고 묻는 기업이 많았어요. 종잣돈 격인 8억원의 시드 투자도 받았죠.”

     

    종이팩 제조 기술 유출 우려도 있지만, 리필리의 미션을 먼저 생각했다. “최대한 빠르게 플라스틱 용기를 종이팩으로 대체하는 게 저희 미션입니다. 자체 브랜드로 제품을 알리는 것보다 여러 기업과 동시에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협업 문의가 많이 들어와 대응하다 보니 주력 사업 모델이 저절로 B2B(기업 간 거래) 사업으로 전환됐습니다.”

     

    ◇모든 플라스틱 용기를 종이팩으로 바꾸는 게 목표

     

     

    LG소셜캠퍼스의 지원과 시드 투자를 받아 공장을 확장 이전했다. /김재원 대표 제공

     

    올해 상반기 LG소셜캠퍼스의 12-1기 LG소셜펠로우로 선정됐다. “사회적 경제 기업 지원 사업인데요. 그동안 기술 개발에 매진하면서 놓쳤던 마케팅, 기업 법률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돼 사업체를 한 번 다듬는 계기가 됐어요. LG전자와 LG화학의 오픈 이노베이션 사업에도 연결해주셔서 기술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죠.”

     

    대규모 생산량을 감당하기 위해 공장 규모도 키웠다. “기업과 협업하려면 동시에 대량 생산이 가능해야 하고, 다양한 모양의 종이팩을 만들어야 해요. 경기도 연천에 있던 공장을 가산디지털단지로 이전해 기계를 추가로 들여 규모를 키웠습니다. 용량, 모양별로 60종의 종이팩을 생산할 수 있어요. 공장이 커지면서 35년간 대기업 계열사 공장장으로 계셨던 시니어 엔지니어를 공장장으로 모셨습니다.”

     

    2035년까지 세계 플라스틱 용기 제품의 절반 이상을 종이팩으로 바꾸는 게 목표다. “다음 달 중순쯤 공장 설비가 모두 구축되면 편백수 제품을 먼저 종이팩으로 유통할 계획입니다. B2B 제품으로, 스프레이에 담아 쓰는 소독용 천연 물질이죠. 이외에도 순차적으로 샴푸, 린스, 바디워시 등 화장품도 종이팩으로 유통할 예정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플라스틱 용기로 유통되는 식품, 생활용품, 화장품 등 대부분을 종이팩으로 대체하고 싶어요.”

     

      

    사회적경제 기업을 이끄는 김재원 대표. 종이팩 재활용 방법을 당부했다. /더비비드

     

    종이팩 분리수거 방법을 재차 당부했다. “종이팩은 따로 모아만 두면 100% 재활용이 가능해요. 그런데 이 방법이 잘 알려지지 않아 일반 종이와 함께 버려지고 있어요. 다 사용한 종이팩을 헹군 뒤 납작하게 펼쳐 따로 모아 두기만 하면 됩니다. 아파트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없다면, 번거로워도 행정복지센터에 반납해주세요. 그러면 재활용 업체에서 수거해 코팅을 벗겨내고 고급 펄프 원료로 만든답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업을 하면서 도움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사회적 경제 기업을 지원하는 육성책도 많고, 사업 소개를 하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투자사가 많아요. 만큼 사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임무가 막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책임감이 저를 더 집요하게 만듭니다. 종이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기계를 끝내 개발해낸 것처럼요.”

     

    기사원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