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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일보] 전세계 바다를 뒤덮은 폐어망, 한국 스타트업이 해결책 찾았다

    2022-06-101181

  • [스타트업 취중잡담] 폐어망 재활용해 나일론 만드는 스타트업 ‘넷스파’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성장을 돕기 위해 스타트업 인터뷰 시리즈 ‘스타트업 취중잡담’을 게재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에 취해 있을까요? 

    그들의 성장기와 고민을 통해 한국 경제의 미래를 탐색해 보시죠.

     

     

    폐어망을 이용해 나일론 섬유를 생산하는 ‘넷스파’를 창업한 정택수 대표. /더비비드


    [박유연 기자 / 김영리 더비비드 기자] ‘해양폐기물’ 하면 페트병, 비닐, 담배꽁초 같은 생활 쓰레기부터 떠올리지만 큰 골칫거리는 따로 있다. 어업 활동에서 나오는 ‘폐어망’, ‘스티로폼 부표’ 따위다. 해양환경정보포털에 따르면 국내 해양폐기물 중 어업 관련 쓰레기 비중이 40%에 이른다. 어업 쓰레기는 해양 생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어업 생산에 차질을 주고 선박 사고를 일으킨다.

    우리나라의 한 스타트업이 폐어망 문제의 해결책을 내놨다. 폐어망을 이용해 나일론 섬유를 생산하는 ‘넷스파’의 정택수(31) 대표를 만났다. 


    ◇친환경 제품 유통하려다 제조업에 발 들인 이유


    해양쓰레기의 실질적 주범은 어업 활동에서 나오는 폐어망이다. /넷스파

     

    폐어망은 조업을 마치고 배출되는 ‘다 쓴 그물’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물은 주로 나일론이 주원료인 ‘자망’이 쓰이는데, 일회용이라 한 번 조업하면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4만3000톤의 폐어망이 버려진다. 정택수 대표가 2020년 10월 창업한 ‘넷스파’는 어촌에서 버려지는 폐어망을 수거해 나일론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어망은 나일론 외에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등 섬유를 여러 가닥으로 꿴 것이다. 세 섬유 간의 물리적 결합을 끊어내고 나일론 원사만 추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넷스파는 이 기술을 개발해 순도 98% 이상의 고품질 나일론을 생산한다. 재활용 나일론은 효성티앤씨 등 유명 의류용 합성 섬유 기업에 납품된다. 가능성을 인정 받아 누적 30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항구에 무분별하게 버려져 있는 어망과 어구들. /정택수 대표 제공


    2016년 부경대 안전공학과 졸업 직후 현대중공업 환경안전팀에 취직했다. 직장생활 3년차 대리로 승진했을 무렵 친구와 함께 창업을 결심했다. “환경안전팀에서 근로자 안전 관리, 안전 기술 설계를 담당했어요. 친환경 기술도 개발하는 팀이었기에 환경 관련 정책을 많이 접했죠. 직접 창업한다면 ESG 경영은 필수라고 생각했어요. 마침 의류학을 전공하고 섬유 시험분석원으로 일하던 고등학교 동창이 패션 브랜드 창업을 고민하더군요. 친환경 패션 브랜드를 만들면 사회적 가치도 창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업을 제안했어요.”


    2020년 4월 퇴사 후 곧바로 의류 브랜드 ‘리들리’를 론칭했다. “멸종위기종인 바다거북의 이름을 딴 브랜드였는데요. 재활용 폴리에스터, 유기농 순면을 활용한 티셔츠나 산업 폐기물에서 추출한 나일론을 활용한 모자 등을 만들었습니다.”



    정택수 대표와 송동학 CTO. 의류 브랜드 창업부터 함께 했다. /정택수 대표 제공


    의도는 좋았으나 금방 난관에 봉착했다. “재활용 소재를 다양하게 구해야, 제품군을 확장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국내에는 재생 섬유를 생산하는 기업이 별로 없어요. 특히 운동복 제작을 위해 재활용 나일론을 찾았는데, 국내에선 구할 수 없었어요. 수소문 끝에 유럽에서 어업 폐기물을 활용한 재생 나일론 생산 업체를 찾았는데요. 유명 브랜드와 대규모 계약만 하고 있더라고요. 사업 규모가 작은 저희에겐 기회가 오지 않았죠.”


    원료 수급이 어려워 6개월 만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대기업 퇴사까지 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문득 ‘우리가 직접 재활용 섬유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경쟁 기업이 없다는 것을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며 알게 된 상황에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그물 재활용 기업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쓴 그물이 옷으로 변하는 과정



    넷스파의 대규모 공장 현판. 7월부터 정식으로 가동된다. /정택수 대표 제공


    2020년 10월 송동학 CTO와 함께 두 번째 창업을 했다. “넷스파로 사업자 등록을 마치고, 가장 먼저 국내 연안을 한 바퀴 돌았어요. 동해를 시작으로 남해, 서해까지 80군데의 항구를 둘러봤죠. 섬유를 추출할 수 있을 만한 어망이 있는지, 폐어망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자세히 확인했습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바다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업화하려니 풀어야 할 과제가 많았다. “일단 폐어망이 정말 많았어요. 연간 4만4000톤이 버려지죠. 이렇다 할 처리 방법이 없더군요. 어촌 공터에 그저 쌓아둘 뿐이죠. 정부 차원에서 폐어망을 수매하는 사업이 있긴 한데, 예산이 금방 소진됩니다. 수매사업이 중단되면 보상도 받을 수 없으니 어촌 곳곳에 폐어망이 그대로 방치되죠. 폐기물 업체가 수거하는 방안도 있는데, 비용이 드는 데다가 수거해봤자 소각 아니면 매립하는 데 그쳤어요. 한번 사용한 어망은 염분이 있어 재활용하기 번거롭거든요.”



    80곳 이상의 항구를 돌며 폐어망 실태를 조사했다. /정택수 대표 제공


    위탁 업체를 통해 어망을 수거해 확보할 수 있다고 해도, 문제는 ‘추출’이었다. “폐어망은 스티로폼 부표나 체인, 로프 등의 각종 부자재들과 뒤섞여 버려져요. 여기서 어망만 분리한 뒤 세척을 해야 하죠. 어망은 나일론 섬유, PE(폴리에틸렌), PP(폴리프로필렌) 섬유가 엮인 형태인데요. 유럽의 경우 이걸 인력으로 선별하더군요. 사람이 직접 꼬인 실을 가위로 잘라가며 섬유를 분류하죠. 재활용 나일론의 단가가 비싼 이유를 이때 알았어요. 일단 저희도 인력으로 분류 작업을 해봤는데, 하루에 한 명이 25kg 정도밖에 생산을 못하더라고요. 생산성이 너무 떨어졌죠.”


    엉킨 어망에서 한 번에 나일론을 분류할 방법이 필요했다. 4개월간의 밤낮없는 연구 끝에, 핵심 원리를 터득했다. “기본 메커니즘은 그물을 잘게 분쇄한 뒤 원료별 특성 차이를 이용해 분리하는 방식입니다. 특허 출원 중이라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건축폐기물 처리 업체도 폐기물들을 모아 분쇄한 뒤 선별하는 과정을 거치거든요. 다른 산업 폐기물의 처리 방법에서 착안해, 어망에 맞는 5mm 단위의 분쇄기를 직접 개발했어요.”



    넷스파에서 펠릿 형태로 제작하는 재활용 나일론. /넷스파


    기술 개발과 동시에 용처를 확보했다. “개발에 3억원이나 들였어요. 자금난을 겪지 않으려면 당장 납품처가 필요했죠. 의류용 섬유를 생산하는 기업에 직접 연락했어요. 페어망을 활용한 나일론을 추출 방식을 설명했죠. 좋게 봐주시더군요. 윤리적 패션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 높아지면서 수요도 많다면서요. 안정적인 공급만 보장되면 바로 계약하겠다는 기업이 나왔습니다.”


    바로 설비 구축에 들어갔다. “2021년 2월 경남 하동에 작은 공장을 마련했습니다. 월 2톤 수준의 나일론만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이라, 철야로 공장을 가동했죠. 철야로 근무한 덕분에 대기업과 업무 협약을 할 수 있었어요. 효성티앤씨에 나일론을 펠릿(Pellet: 작은 원기둥 모양의 알갱이) 형태로 공급할 계획입니다. 재활용 나일론의 상품성을 인정받은 순간이죠.”


    ◇해양폐기물 선순환 체계 구축이 목표



    넷스파가 만든 재활용 나일론은 공업용 플라스틱이나 운동복 옷감으로 사용될 수 있다. /넷스파


    2021년 11월 3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사회적 기업으로도 인정받았다. 2021년 부산시 예비 사회적 기업에 지정됐고, 얼마 전 LG소셜캠퍼스가 운영하는 소셜 벤처 지원 사업 ‘LG소셜펠로우’에 선정됐다.


    공장 규모도 키웠다. “대량 양산용 플랜트를 구축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습니다. 경남 하동에서 부산 강서구로 넘어와 대규모 공장을 마련했습니다. 7월부터 정식으로 가동됩니다. 그사이 예비 공급사도 두 곳이 더 생겨 연간 4000톤의 나일론을 추출할 계획입니다.”



    어촌에서 버려지는 폐어망을 수거해 나일론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한 '넷스파'의 정택수 대표. /더비비드


    해양폐기물 산업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위탁 업체를 통해 폐어망을 수거하고 있는데요. 사회취약계층 분들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어망 직접 수거 체계를 만들 예정입니다. 어망에서 나일론을 추출하고 남은 PP와 PE도 재활용 방안을 찾았습니다. 열분해해서 석유를 추출하는 거죠. 현재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해양 폐기물의 선순환 체계를 넷스파가 구축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사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창업 동기가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창업하기 전까지 깨끗하고 좋은 것만 보고 살았어요. 풍요롭게 누리는 것들 이면에 이렇게 심각한 환경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지 솔직히 몰랐죠. 한번 들여다보니 이전처럼 외면하고 살 수가 없더라고요. 업무적 난관을 마주했을 때마다 내 사업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 자체가 동기부여가 되더군요. 사업은 버티는 거라고 하잖아요. 단순히 돈 벌려고 시작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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